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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하나도 안 아픈데 손이 먼저 망가진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저는 지도교수님이 목 보조대를 차고 연구실에 돌아오셨던 날에야 비로소 이 질문의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교수님의 진단명은 '경추척수증'이었고, 정작 목 통증은 거의 없으셨다고 했습니다. 젓가락을 놓치고 단추를 못 채우던 증상이 수개월째 이어졌는데도, 목이 안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방치하셨던 것입니다.

척수 압박 — 목디스크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
경추척수증(cervical myelopathy)이라는 진단명을 처음 들었을 때, 저도 목디스크의 일종이겠거니 했습니다. 여기서 경추척수증이란 목뼈 안을 지나가는 척수, 즉 뇌에서 사지로 이어지는 신경의 본선 자체가 물리적으로 눌려 기능 장애가 생긴 상태를 말합니다. 목디스크가 '신경 한 가닥'이 눌리는 문제라면, 경추척수증은 그 신경이 모두 지나가는 고속도로 전체가 막힌 것에 가깝습니다.
목디스크(경추 추간판탈출증)나 경추협착증, 후종인대골화증(OPLL)은 경추척수증의 원인 질환입니다. 후종인대골화증(OPLL)이란 척추체 뒤쪽을 지지하는 인대가 뼈처럼 굳어가면서 척추관을 점점 좁혀가는 질환으로, 이로 인해 척수가 지속적인 압박을 받으면 경추척수증으로 이어집니다. 이 세 질환이 모두 같은 계열처럼 보이지만, 경추척수증은 그 결과로 척수 기능 자체에 이상이 생긴 '상태'이기 때문에 성격이 다릅니다.
교수님 증상의 흐름도 정확히 이 패턴이었습니다. 판서 중 분필을 흘리고, 타자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지고, 계단에서 휘청거리셨습니다. 그런데 목이나 어깨에 통증이 없었기에 스스로 단순 피로로 돌리셨던 것이죠. 고려대 안산병원 정형외과 자료에 따르면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는 특성상 초기에 이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출처: 고려대학교의료원).
손의 미세동작 저하와 보행장애가 함께,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핵심 감별 포인트입니다. 손 저림만 있다면 손목터널증후군이나 말초신경 문제일 수 있지만, 아래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난다면 척수 이상을 의심해야 합니다.
- 젓가락질·단추 채우기·글씨 쓰기 등 손끝 미세동작이 수개월에 걸쳐 서툴러짐
- 걸음이 둔해지거나 계단을 내려갈 때 균형을 잡기 어려워짐
- 목 통증은 거의 없거나 경미한데 위 두 증상은 계속 악화됨
많은 분들이 "목이 안 아프면 목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시는데, 경추척수증만큼은 그 공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 통증이 없어서 더 위험한 병입니다.
수술 기준과 전방경추유합술 — MRI가 전부가 아닌 이유
MRI에서 척수가 많이 눌려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수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척추관이 상당히 좁게 나와도 일상 기능에 별다른 지장이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 MRI 소견은 중간 정도인데 손 기능과 보행장애가 빠르게 나빠지는 환자도 있습니다. 판단의 핵심은 척수 기능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가입니다.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서울부민병원 경추센터 이준호 센터장이 2023년 국제 척추 전문학술지 뉴로스파인(Neurospine)에 발표한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경추척수증 치료를 위한 두 대표 수술법인 전방경추유합술(ACDF)과 인공디스크 치환술(ADR)을 비교한 임상연구 6건 중 2건에서는 인공디스크 치환술이 기능 회복에서 유의하게 우월했고, 나머지 4건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습니다(출처: Neurospine).
여기서 전방경추유합술(ACDF, Anterior Cervical Discectomy and Fusion)이란 목 앞쪽으로 접근해 눌린 디스크나 뼈를 제거하고 해당 마디를 고정하는 수술입니다. 쉽게 말해 척수를 압박하는 구조물을 걷어내고 그 마디가 다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반면 인공디스크 치환술(ADR, Artificial Disc Replacement)은 제거한 자리에 인공디스크를 삽입해 해당 마디의 움직임 자체를 보존하는 방식입니다.
교수님은 퇴행성 변화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전방경추유합술(ACDF)을 선택하셨다고 했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전해 들으니, 척수는 두부처럼 물렁한 조직이라 한번 크게 손상되면 재생이 어렵고 방치하면 사지 마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술의 목적이 회복만이 아니라 추가 악화를 막는 데 있다는 점도 당시 제게 새롭게 다가온 사실이었습니다.
수술법 선택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젊고 활동량이 많으며 해당 분절의 운동성을 유지할 필요가 큰 환자라면 인공디스크 치환술이 고려되고, 퇴행성 변화나 불안정성이 심한 경우에는 전방경추유합술이 더 적합합니다. 절대적인 우열은 없으며, 병변 범위·척수 압박 원인·뼈와 관절 상태를 종합해 결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목이 안 아픈데 경추척수증일 수 있나요?
A.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경추척수증의 특징 중 하나가 목 통증이 심하지 않거나 거의 없는 경우에도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손끝 미세동작이 서툴러지고 걸음이 불안정해지는 증상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목 통증 유무와 관계없이 MRI 검사를 받아보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Q. 경추척수증은 약이나 물리치료로 나을 수 있나요?
A. 증상이 경미하고 안정적인 초기 단계라면 경과 관찰을 병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척수 기능 저하가 진행 중인 상태라면 약물이나 물리치료만으로는 척수를 압박하는 구조적 원인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척수는 한번 손상되면 재생이 어렵기 때문에, 기능 저하가 진행 중이라면 수술 필요성을 직접 평가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수술하면 손놀림과 보행이 완전히 회복되나요?
A. 회복 정도는 환자마다 크게 다릅니다. 증상이 지속된 기간, 척수 손상 정도, 나이가 모두 영향을 미칩니다. 교수님 경우처럼 비교적 빠르게 수술을 결정하신 분들은 보행 감각과 손 기능이 차츰 돌아오는 경향이 있지만, 이미 신경 세포에 기질적 변화가 생긴 경우에는 더 이상의 악화를 막는 것 자체가 수술의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Q. 전방경추유합술과 인공디스크 치환술 중 어느 것이 더 좋은가요?
A. 두 수술법 사이에 절대적인 우열은 없습니다. 2023년 뉴로스파인(Neurospine)에 발표된 메타분석 결과에서도 일부 연구에서는 인공디스크 치환술이 기능 회복에 유리했고, 나머지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젊고 활동량이 많은 환자에게는 움직임을 보존하는 인공디스크 치환술이, 퇴행성 변화가 심한 경우에는 전방경추유합술이 더 적합한 것으로 보입니다.
Q. 경추척수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척추 퇴행 자체를 완전히 막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만 고개를 과도하게 숙이는 자세를 줄이고, 규칙적인 걷기 운동과 목 스트레칭을 습관화하는 것이 경추에 가해지는 누적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흡연은 디스크 혈액 순환을 방해해 척추 퇴행을 가속시키므로 금연도 중요한 예방 요소입니다.
결론
제가 이 경험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통증이 없다는 사실이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경추척수증은 몸이 먼저 말합니다. 단지 우리가 자주 듣지 않을 뿐입니다. 젓가락을 자꾸 놓친다, 계단이 불안하다, 단추가 예전보다 서툴다. 이런 신호들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목 통증이 없더라도 신경외과나 정형외과를 찾아 MRI를 포함한 정밀 검사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척수는 한번 손상되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수술 시기를 놓치면 회복의 폭 자체가 줄어듭니다. 교수님이 보조대를 차고 돌아오셨을 때 보여주신 모습이 저로서는 그 어떤 의학 교재보다 선명한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 https://n.news.naver.com/article/296/0000104729?type=editd&cds=news_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