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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운전 중에 "옆에서 차가 들어오는 게 잘 안 보인다"고 하셨을 때, 저는 솔직히 처음엔 그냥 노안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노안과는 전혀 다른 신호였다는 걸, 대학병원 안과에서 '녹내장' 진단을 받은 뒤에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녹내장은 통증도 없고 앞이 흐려지지도 않아서, 정작 이상을 느꼈을 때는 이미 시신경 손상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습니다.

녹내장 고위험군, 나는 해당될까
아버지 진단 이후 저도 안과에서 검사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고위험군'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막연히 "노인에게 오는 질환"이라고 생각했던 녹내장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던 거죠.
녹내장은 시신경(視神經), 즉 눈이 받아들인 시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신경 다발이 서서히 손상되면서 시야가 좁아지는 질환입니다. 여기서 시신경이란, 카메라로 치면 필름에서 컴퓨터로 사진을 전송하는 케이블에 해당합니다. 이 케이블이 조금씩 끊어지면, 처음엔 화면 가장자리부터 검게 사라지기 시작하는 거죠.
그렇다면 누가 특히 조심해야 할까요. 가족 중에 녹내장 환자가 있다면 발병 확률이 일반인의 2~3배까지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버지가 진단을 받은 순간, 저도 고위험군 목록에 들어간 셈이었습니다. 만 40세 이상이라면 눈에 아무 이상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정기 검진이 필요하고, 고혈압·당뇨 같은 혈관 순환 장애가 있거나 고도근시(-6 디옵터 이상)인 분들도 주의 대상입니다. 고도근시의 경우 안구 길이가 길어지면서 시신경 주변 구조 자체가 얇아지고 변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가족 중 녹내장 환자가 있는 경우 (발병률 2~3배)
- 만 40세 이상 성인 (안압 조절 기능 저하, 시신경 노화 가속)
- 고혈압·당뇨 등 혈관 순환 장애가 있는 경우
- 고도근시(-6디옵터 이상)인 경우
"증상 없으면 건강한 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위험군에 해당한다면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1년에 한 번 정기 검진을 받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확실한 예방책으로 보입니다. 출처: 미국안과학회(AAO)
초기 증상이 없다는 게 왜 이렇게 무서운가
아버지 진단 직후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게 있습니다. "시력이 좋다는 것과 시야가 온전하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시력검사에서 1.0이 나오면 눈이 건강하다고 믿어 왔으니까요.
녹내장이 초기에 잘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시야 손상이 주변부(周邊部)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녹내장은 가장자리 시야부터 서서히 좁아지는데, 우리 뇌는 빠진 부분을 주변 정보로 자동으로 메워 버립니다. 나무를 볼 때 시신경이 손상돼 보이지 않는 부분도 뇌가 주변의 초록 잎 이미지를 가져와 채워 버리니, 환자는 "다 잘 보인다"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둘째, 한쪽 눈에 문제가 생겨도 반대편 눈이 보완해 주기 때문에 두 눈을 뜨고 생활하는 동안엔 이상을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대비 감도(Contrast Sensitivity)라는 개념도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대비 감도란 밝고 어두운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인데, 녹내장 초기엔 이 기능이 먼저 떨어집니다. 그래서 계단 끝이 잘 구분되지 않아 발을 헛디딘다거나, 어두운 곳에서 유독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초기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돌이켜 보면 어두운 주차장에서 차 간격을 가늠하는 걸 어려워하셨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그냥 "어두워서 그렇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사소한 변화를 그냥 지나치는 게 가장 위험합니다.
결국 스스로 "어라, 뭔가 이상한데"라고 느꼈을 때는 이미 전체 시신경의 80~90% 이상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손상된 경우가 대다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번 죽은 시신경은 현대 의학으로도 재생이 불가능합니다. 출처: 미국 국립안과연구소(NEI)
안압 관리가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
녹내장 치료에 대해 많은 분들이 "수술하면 낫는 거 아닌가요?"라고 물으십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의학에서 녹내장 치료의 목표는 완치가 아니라 진행을 최대한 늦추는 것입니다. 이미 손상된 시신경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시야를 평생 지키는 게 치료의 핵심입니다.
치료의 중심에는 안압(眼壓) 조절이 있습니다. 안압이란 눈 안을 채우는 방수(房水)라는 액체의 압력을 말합니다. 방수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배출되면서 눈의 형태를 유지하는데, 이 배출 통로가 막히면 눈 안의 압력이 높아지고 그 압력이 시신경을 눌러 손상을 일으킵니다. 풍선에 공기를 너무 많이 넣으면 가장 약한 부분부터 터지려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안압이 정상이면 녹내장이 없는 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도 그 질문을 의사 선생님께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압이 정상 범위여도 시신경으로 가는 혈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거나, 타고난 시신경 자체가 약한 경우에도 녹내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를 정상 안압 녹내장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인과 동아시아 인종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는 유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정해진 시간에 안압을 낮추는 점안약을 넣으십니다. 제가 알람까지 설정해 드리고 있는데, 안압은 하루 중에도 변동이 있어서 한두 번 거르는 것만으로도 시신경에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로는 저도 꽤 꼼꼼하게 챙기게 됐습니다. 약물로 조절이 어려울 경우에는 레이저 치료나 방수가 빠져나가는 새 통로를 만드는 수술을 고려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약물치료를 먼저 시도하는 흐름입니다.
정기적인 안과 검진에서는 안압 측정과 함께 OCT(Optical Coherence Tomography, 빛간섭 단층촬영) 검사를 병행합니다. OCT란 빛의 간섭 원리를 이용해 시신경의 두께와 구조를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촬영하는 장비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신경 변화까지 수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이 검사로 초기에 발견이 가능했던 만큼, 조기 발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녹내장인데 시력은 정상이에요. 치료가 꼭 필요한가요?
A. 네,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력(視力)과 시야(視野)는 다른 개념입니다. 중심부 시력은 말기까지 1.0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력이 좋다고 해서 시야가 온전한 건 아닙니다. 치료 없이 방치하면 주변 시야가 계속 좁아지다가 결국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Q. 안압이 정상인데도 녹내장이 올 수 있나요?
A. 그렇습니다. 이를 정상 안압 녹내장이라고 하며, 시신경으로 가는 혈류 공급이 불충분하거나 시신경 자체가 약한 경우에 발생합니다.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 인종에서 비교적 흔한 유형으로 알려져 있어, 안압이 정상이어도 안심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Q. 집에서 녹내장을 의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한쪽 눈을 가리고 반대편 손가락을 옆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손가락이 사라지는 각도를 확인하는 간이 시야 테스트를 해볼 수 있습니다. 정상이라면 80~85도 근방까지 보여야 하며, 70도 이하에서 손가락이 사라진다면 안과 검진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단, 이는 참고용 자가 확인이며 확진 검사는 아닙니다.
Q. 녹내장 점안약을 가끔 빠뜨려도 괜찮나요?
A. 가능하면 빠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압은 하루 중에도 변동이 있기 때문에 한두 번 거르는 것만으로도 시신경에 예상보다 큰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을 의사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알람을 설정해 두거나 식사·양치 같은 습관적 행동과 연결해 빠뜨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법을 권합니다.
Q. 40세 이하면 녹내장 검사는 안 받아도 되나요?
A. 40세 이하라도 가족력이 있거나 고도근시, 고혈압·당뇨 등이 있다면 고위험군에 해당하므로 나이와 관계없이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증상이 없는 젊은 나이에 발견해야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많이 남기 때문입니다.
결론
아버지 진단을 계기로 저는 "잘 보인다"는 말이 얼마나 불완전한 안도감인지 제대로 배웠습니다. 녹내장은 통증도, 시력 저하도 없이 주변부터 시야를 잃어가기 때문에, 본인이 느꼈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 쌓인 뒤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부모님이 눈이 침침하다고 하시는데 노안이겠거니 하고 넘기신 분이 계시다면, 한 번만 더 물어봐 주세요. 옆쪽 시야가 답답하진 않은지, 어두운 곳에서 계단이 잘 안 보이지는 않은지.
만 40세 이상이거나 가족력이 있다면 증상과 무관하게 안과 정기 검진을 받아보시길 진심으로 권합니다. 지금의 시야를 지키는 것이 녹내장 치료의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