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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속에는 100조 마리 이상의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질병의 90% 이상이 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과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과장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1년 전, 항생제를 수개월째 복용하다가 피부와 장 건강을 동시에 무너뜨리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이 수치가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장내미생물이 '제2의 장기'라 불리는 진짜 이유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의 합성어로, 우리 몸에 존재하는 모든 미생물과 그 유전정보 전체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핵심은 '유전정보 전체'라는 부분입니다. 장내에 서식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이 품고 있는 유전자 수는 인간 유전자의 150배 이상에 달합니다. 인간 게놈이 고작 초파리와 비슷한 약 2만 개의 유전자를 가진 것에 비하면, 우리 장속 미생물이 얼마나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지 실감이 됩니다.
이 미생물들은 인체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다양한 효소를 생산하여 영양소 흡수를 돕고, 약물 및 발암물질 분해, 면역 조절, 심지어 뇌와 감정·행동 발달에도 관여합니다. 과학계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을 '잊혀진 장기(forgotten organ)'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장 건강은 변비나 설사 같은 단순 소화 문제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상당히 다릅니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인 균총 다양성(microbiota diversity)이 무너지면 소화기 질환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비만, 당뇨병, 자폐증, 파킨슨병, 심지어 아토피 피부염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2001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데이비스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인체 내 1,000여 종의 균과 400만 개에 이르는 유전자 정보로 건강과 질병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출처: 사이언스타임즈), 그 이후로 이 분야의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특히 무너지기 쉬운 상황들이 있습니다.
- 항생제 장기 복용: 병원균과 함께 유익균까지 사멸시켜 클로스트리디움(Clostridium difficile) 같은 병원균이 과증식할 수 있습니다. 클로스트리디움이란 장내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기회감염 병원균입니다.
- 패스트푸드·인공 감미료·탄산음료: 이른바 '제로' 제품에 쓰이는 인공 감미료도 장내 균총을 교란한다는 연구가 있어 저는 개인적으로 꽤 걱정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 불규칙한 식단과 스트레스: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 섭취가 줄면 균총 다양성이 빠르게 감소합니다. 프리바이오틱스란 바나나, 양파, 고구마, 발효식품 등에 함유된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영양분을 의미합니다.
프로바이오틱스부터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까지, 직접 검증해 보니
일반적으로 프로바이오틱스는 그냥 유산균 영양제 정도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학병원 기능의학과에서 개인 맞춤형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검사를 받고 나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검사 결과 제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은 또래 평균에 한참 못 미쳤고, 균총 다양성 지수도 현저히 낮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무분별한 항생제 오남용이 제 몸속 미생물 생태계를 황폐화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처방받은 맞춤형 생균제와 식이섬유가 풍부한 프리바이오틱스 식단을 6개월 동안 병행했습니다.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란 장내에 유익한 영향을 주는 살아있는 미생물로, 락토바실러스균, 비피더스균 등이 대표적입니다. 동시에 피부에는 피부 마이크로바이옴 균형을 돕는 유익균 발효 유래 성분의 화장품만 사용했습니다. 6개월 뒤, 강한 약으로도 쉽게 잡히지 않던 피부 염증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고, 매일 저를 괴롭히던 복부 팽만감과 소화 장애도 확연히 줄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제 분야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바이오 영역 중 하나입니다. 2023년 6월, 세레스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보우스트(Vowst)'가 세계 최초 먹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로 미국에서 출시되었습니다.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증(CDI)을 타깃으로 하는 이 약은 출시 4개월 만에 100억 원 매출을 돌파했습니다. CDI란 항생제 사용 후 장내 균총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재발성 장 감염 질환으로, 기존 항생제 치료로는 재발을 막기 어렵다는 점에서 난치성으로 분류됩니다.
국내외 제약사와 바이오벤처들도 앞다퉈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를 개발 중입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크론병, 당뇨병, 아토피 피부염, 자폐증을 타깃으로 하는 파이프라인이 200개를 넘는다는 보고도 있습니다(출처: 바이오인(BioIN)). 기존 치료제처럼 외부 화학물질을 투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몸속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 자체를 복원하는 새로운 개념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방향이 현대 의학이 나아가야 할 근본적인 길이라고 봅니다. 증상만 억누르는 게 아니라 원인을 되돌리는 치료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이크로바이옴 검사는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A. 대학병원 기능의학과나 일부 소화기내과에서 개인 맞춤형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받아봤는데,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 균총 다양성 지수 등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어 막연한 건강 불안보다 훨씬 명확한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검사 비용이 비급여인 경우가 많으니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 뭐가 다른 건가요?
A. 일반적으로 둘 다 '유산균 관련 제품'으로 묶어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역할이 다릅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장에 직접 살아 들어가는 유익균 자체이고, 프리바이오틱스는 그 유익균이 장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먹이가 되는 영양분입니다. 바나나, 사과, 양파, 김치, 된장 같은 식품에 프리바이오틱스가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제 경험상 둘을 함께 섭취했을 때 효과가 훨씬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Q. 항생제를 먹으면 무조건 장 건강이 나빠지나요?
A. 단기 복용이라면 회복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장기 복용과 오남용입니다. 항생제는 병원균과 유익균을 구분하지 않고 사멸시키기 때문에, 수개월 이상 복용하면 균총 다양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저도 이 경우에 해당했고, 회복에 6개월 이상이 걸렸습니다. 항생제 복용 중이거나 복용 후라면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를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Q. 제로 음료나 인공 감미료가 진짜 장에 안 좋은가요?
A. 칼로리를 줄인 '제로' 제품이 건강에 무조건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인공 감미료가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교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아직 인과관계가 완전히 규명된 것은 아니라 단정은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가능하면 자연 발효 식품이나 섬유질 위주의 식단으로 대체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마이크로바이옴은 단순한 바이오 트렌드 키워드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몸으로 검증한 결과, 증상을 억누르는 기존 치료 방식과 몸속 생태계를 복원하는 방식은 결과가 다릅니다. 피부를 고치려다 장까지 망가뜨렸던 경험은, 우리 몸이 얼마나 정교하게 연결된 생태계인지를 실감하게 해줬습니다.
지금 장이나 피부에 원인 모를 트러블이 반복된다면, 단순히 증상을 잡는 약을 찾기 전에 내 몸속 균총 상태를 한 번쯤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맞춤형 마이크로바이옴 검사와 프리바이오틱스 식단 병행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2025년부터 정부도 4,000억 원 규모의 마이크로바이옴 기술 개발 사업을 본격 추진할 예정인 만큼, 앞으로 이 분야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https://www.sciencetimes.co.kr/nscvrg/view/menu/263?searchCategory=232&nscvrgSn=254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