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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친했던 친구가 계단 두 층만 올라와도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다들 시험 기간 피로겠거니 넘겼는데, 알고 보니 헤모글로빈 수치가 8g/dL대까지 떨어진 철결핍성 빈혈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경구 철분제를 수개월 복용하며 겪은 일들, 그리고 최근 정맥 철분 주사의 부작용 소식까지 접하고 나서 이 주제를 정리해 두고 싶었습니다.

빈혈 증상, 단순 피로와 구분하는 법
철결핍성 빈혈은 체내 철분이 부족해 헤모글로빈(hemoglobin) 생성이 줄어드는 질환입니다. 여기서 헤모글로빈이란 적혈구 안에서 산소를 온몸에 실어 나르는 단백질로, 이 수치가 낮아지면 세포가 산소를 충분히 받지 못해 온몸이 가동 한계에 걸린 것처럼 버거워집니다.
국내 철결핍성 빈혈 환자는 약 35만 명으로 보고되며, 이 중 여성이 남성보다 약 세 배 많습니다. 특히 30~40대 가임기 여성에서 비중이 높은데, 가장 큰 이유는 월경으로 인한 반복적인 혈액 손실입니다. 월경량이 80mL 이상이면 의학적으로 과다월경으로 정의하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철 손실이 식이 보충 속도를 앞질러 버립니다.
제 친구의 경우도 월경량이 꽤 많은 편이었는데, 본인도 "그냥 내 월경이 원래 이런가 보다" 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월경량이 많은지 적은 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습니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PBAC 점수(Pictorial Blood Assessment Chart)입니다. 쉽게 말해 생리대나 탐폰이 어느 정도 젖었는지, 덩어리 혈이 나왔는지를 그림 기준표에 맞춰 매일 점수로 기록하고, 한 주기 총점이 100점을 넘으면 과다월경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도구입니다.
증상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하나라도 반복된다면 혈액 검사를 먼저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 충분히 쉬어도 풀리지 않는 극심한 피로감
- 계단 2~3층에도 숨참, 가슴 두근거림
- 반복되는 어지러움·두통
- 피부 창백, 손톱 갈라짐·부서짐, 머리카락 다량 탈락
- 집중력 저하, 이유 없는 무기력함
진단은 CBC 혈액 검사(Complete Blood Count, 완전혈구검사)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확인되면, 추가로 혈청 페리틴(ferritin) 수치를 봅니다. 혈청 페리틴이란 몸에 저장된 철분 총량을 반영하는 지표로, 헤모글로빈이 아직 정상 범위여도 페리틴이 바닥이면 이미 철 고갈이 진행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제 친구는 두 수치 모두 바닥이었고, 의사 선생님이 "이 수치면 일상 유지 자체가 신체에 무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솔직히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피로와 구분하기 어려운 이 질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고, 왜 그동안 아무도 빨리 병원에 가라고 설득하지 않았나 반성했습니다.
검사는 금식도 필요 없고 단순 채혈로 끝납니다. 증상이 반복된다면 참고 지낼 이유가 없습니다(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철분제 부작용과 정맥 주사의 새로운 위험 신호
친구에게 처음 처방된 건 경구 철분제였습니다. 제 친구는 약을 먹기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속이 하루 종일 얹힌 듯 불편해했고, 심한 변비까지 겹쳐 매일 철분제를 챙겨 먹는 일 자체가 작은 스트레스가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식사 직후에 약을 복용하거나 비타민 C와 함께 먹으면 위장 자극이 줄어든다고 해서 방법을 바꿔가며 수개월을 복용했습니다. 결국 헤모글로빈 수치가 조금씩 회복됐습니다.
치료 중에 친구가 한 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경구약 말고 정맥으로 직접 넣는 철분 주사도 있다던데, 이렇게 먹는 게 불편하면 차라리 주사 한 방 맞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말했고, 저도 그때는 '그거 편하겠다' 하고 같이 혹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뉴스를 보고 그 생각이 싹 바뀌었습니다.
미국 FDA는 정맥 철분 주사제 성분 중 하나인 페릭 카르복시말토스(ferric carboxymaltose)에 박스 경고(Boxed Warning)를 추가했습니다. 박스 경고란 FDA가 의약품 허가 정보에서 중대한 안전성 위험을 가장 눈에 띄게 표시하는 최고 수준의 경고 조치입니다. 문제가 된 부작용은 저인산혈증(hypophosphatemia)으로, 혈중 인산염 농도가 정상 범위 아래로 급격히 떨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인산염은 뼈를 유지하고 근육이 에너지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물질이라, 수치가 크게 떨어지면 극심한 피로, 근육 약화, 뼈 통증이 나타날 수 있고 장기화될 경우 골연화증이나 골절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출처: 미국 FDA).
문제는 저인산혈증의 증상이 철결핍성 빈혈 증상과 상당히 겹친다는 점입니다. 주사를 맞은 뒤에도 여전히 피곤하고 기운이 없으면, 대부분 "빈혈이 아직 덜 나았나 보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부작용이 부작용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구조인 것입니다. 제 친구가 당시 속이 불편하다고 주사로 갈아탔다면 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에 솔직히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2018년 국제학술지 《JCI Insight》에 발표된 연구에서 페릭 카르복시말토스를 투여받은 철결핍성 빈혈 환자의 50.8%에서 혈중 인산 수치가 2.0mg/dL 미만으로 떨어졌고, 이 중 29.1%는 5주 뒤에도 저인산혈증이 지속됐습니다. 다만 이 수치가 모두 증상을 동반한 심각한 부작용 사례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혈액검사 수치가 기준 아래로 내려간 비율과, 실제 입원이나 골절로 이어진 증상성 저인산혈증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한국에서 같은 성분으로 출시된 '페린젝트' 역시 국내 허가 정보에 골연화증과 골절 위험이 이미 명기되어 있습니다. 특히 3개월 이내 반복 투여, 비타민 D 결핍, 영양 불량, 염증성 장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투여 전 혈청 인산염 수치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정맥 철분 주사가 빠른 보충이 필요한 상황에서 유용한 치료 옵션인 건 맞지만, 무조건 편하고 빠른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철결핍성 빈혈 진단 혈액 검사, 금식하고 가야 하나요?
A. 금식은 필요 없습니다. CBC 검사와 혈청 페리틴 검사 모두 일반 채혈로 진행되기 때문에, 식사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든 검사받을 수 있습니다. 증상이 의심된다면 바로 내과나 산부인과를 방문하면 됩니다.
Q. 경구 철분제 먹을 때 속이 너무 불편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식사 직후 복용하거나 비타민 C와 함께 먹으면 위장 자극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변비나 속 더부룩함이 심하게 지속된다면 혼자 판단해서 복용을 중단하기보다 담당 의사에게 알리고 복용 방법이나 제형 변경을 상의하는 것이 낫습니다.
Q. 정맥 철분 주사 맞고 나서도 피곤하면 빈혈이 안 나은 건가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페릭 카르복시말토스 성분 주사 이후 발생하는 저인산혈증도 피로와 근육 약화를 유발하기 때문에, 주사 후에도 증상이 지속된다면 혈중 인산염 수치를 추가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증상의 원인이 빈혈인지 부작용인지 구분하려면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해야 합니다.
Q. 월경량이 많은지 적은지 스스로 어떻게 알 수 있나요?
A. PBAC 점수를 활용하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생리대나 탐폰의 적혈 정도와 덩어리 혈 유무를 그림 기준표에 맞춰 매일 점수로 기록하고, 한 주기 총합이 100점을 넘으면 과다월경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비교 기준이 없어 판단이 어렵다면 이 방법이 병원 방문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결론
친구의 경험을 가까이서 지켜본 제 입장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다들 너무 오래 '그냥 피곤한 거겠지'로 넘겼다는 점입니다. 빈혈 증상은 워낙 일상적인 피로와 닮아 있어 발견이 늦어지기 쉬운데, 검사 자체는 진짜 간단합니다. 금식도 필요 없고 채혈 하나면 됩니다.
치료 방향도 경구제냐 정맥 주사냐를 단순히 편의로 고를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FDA의 박스 경고 사례를 보면서, 치료 방법마다 숨어 있는 위험을 의료진과 충분히 확인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증상이 있다면 먼저 검사받고, 치료 중에도 몸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 것이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