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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최근까지도 건망증과 치매를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회의 도중 어제까지 쓰던 거래처 이름이 입에서만 맴돌고 끝내 나오지 않던 그 순간, 처음으로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초로기 치매가 전체 치매의 약 1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동안 번아웃 탓으로 돌렸던 증상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증상, 번아웃과 어떻게 다를까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업무 능률이 뚝 떨어지는 경험은 번아웃과 정말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오전 내내 기안서 하나를 붙잡고 있거나, 회의 중 멍해지는 순간들을 그저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라고 넘겨왔습니다. 주말에 12시간씩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초로기 치매의 초기 증상은 이 느낌과 겹칩니다. 전두측두 치매(Frontotemporal Dementia, FTD)라는 유형이 있는데, 여기서 FTD란 전두엽과 측두엽이 선택적으로 손상되며 판단력·충동 조절·언어 능력이 먼저 무너지는 병을 말합니다. 기억력은 멀쩡한 채로 성격이 바뀌거나 직장에서 갑자기 실수가 늘어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환자의 약 25%는 기억력 자체는 정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가족도 치매라는 생각을 못 하고 우울증이나 번아웃으로 오해해 정신건강의학과를 먼저 찾는 사례가 상당히 많습니다. 저처럼 "이건 그냥 스트레스야"라고 단정 짓기 전에, 아래 증상들과 비교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 직장에서 갑자기 업무 능률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계획 수립·문제 해결 능력 저하)
- 늘 다니던 길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두정엽 기능 저하로 인한 공간 지각 이상)
- 잘 알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거 있잖아'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다
- 이유 없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충동 조절이 어려워진다
번아웃은 충분히 쉬면 회복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이 구분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쉬었는데도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뇌의 문제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번아웃으로 넘기다간 놓치는 이유
솔직히 저는 이 부분을 기사를 접하기 전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초로기 치매는 노년기 치매와 비교해 진행 속도 자체가 다릅니다.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는 노년기에 발병하면 10년 이상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알츠하이머란 뇌에 베타-아밀로이드(β-amyloid) 단백질이 축적되며 신경세포가 서서히 파괴되는 퇴행성 뇌 질환을 말합니다. 그런데 65세 이전에 발병한 경우, 4~5년 안에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는 사례가 상당수라는 것이 의료 현장의 이야기입니다.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해야 할 나이에 이렇게 되면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가장이라면, 가정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상황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다가도, 현실로 마주하면 그 무게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편, 이런 조기 발병 치매의 원인을 두고는 시각이 갈립니다. 일반적으로 생활 습관이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의학적으로는 APP·PSEN 유전자 변이처럼 강력한 유전적 요인이 40대 이하 초조기 발병의 상당 부분을 설명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여기서 PSEN 유전자란 알츠하이머 발병에 관여하는 프레세닐린(Presenilin)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로,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비정상적인 아밀로이드가 과잉 생산됩니다(출처: Alzheimer's Association). 다만 유전적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뇌혈관 건강 관리, 수면, 사회적 활동이 인지 기능 보호에 기여한다는 것은 폭넓게 지지되는 사실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어느 한쪽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는 유전 가족력이 없으니까 괜찮다"는 안심도, "커피 한 잔 줄이면 치매가 예방된다"는 단순화도, 둘 다 조심해야 할 태도라고 봅니다.
뇌 건강, 지금 당장 뭘 해야 하나
이 주제를 접하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제 생활 패턴을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막연히 '나중에 나이 들면 챙겨야지' 하던 뇌 건강 관리는 이미 30~40대부터 의미 있는 개입이 필요한 시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국내 중앙치매센터 자료에 따르면 65세 미만 초로기 치매 유병률은 인구 1,000명당 약 1명 수준이지만, 이 숫자가 작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출처: 중앙치매센터). 희귀하지만 발병했을 때의 파급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직 확진을 받지 못한 채 직장에서 '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분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기 발견의 중요성은 작지 않습니다.
신경인지기능검사(Neuropsychological Test)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기억력·주의력·언어·실행 기능 등 뇌의 다양한 인지 영역을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검사입니다. 단순한 문답이 아니라 뇌의 어느 부위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도구입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듯이, 평소와 다른 패턴이 2~3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 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행동입니다.
물론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생활 습관들도 있습니다. 수면의 질 관리, 유산소 운동, 사회적 교류 유지, 정제 탄수화물과 고 나트륨 가공식품 섭취 줄이기 등입니다. 다만 이런 조언들이 '특정 음식 하나를 끊으면 치매가 예방된다'는 식으로 전달될 때는 개인적으로 좀 과장된 면이 있다고 봅니다. 단일 식품 하나의 효과보다는, 전반적인 뇌혈관 건강을 꾸준히 관리하는 방향이 훨씬 합리적인 접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40대에 건망증이 심해지면 치매 검사를 받아야 하나요?
A. 단순한 건망증은 치매와 다르다는 의견도 있는데, 증상이 2~3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업무 능률 저하·언어 표현 어려움·감정 기복 등이 동반된다면 신경과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건망증 자체보다는 일상 기능의 변화가 기준입니다.
Q. 초로기 치매는 치료가 되나요?
A. 현재까지 완치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조기에 발견할수록 진행을 늦추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전두측두 치매의 경우 노년기 알츠하이머보다 진행이 빠른 만큼, 증상을 번아웃으로 넘기지 않고 빨리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가족력이 없으면 초로기 치매 걱정을 안 해도 되나요?
A. 유전적 요인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족력이 없다고 해서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뇌혈관 건강, 수면, 만성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유전 가족력 여부와 관계없이, 이상 증상이 지속되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Q. 초로기 치매 검사는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A. 신경과 전문의가 있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신경인지기능검사와 뇌 MRI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치매안심센터(전국 256개소)에서도 초기 선별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으니 먼저 방문해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결론
이 글을 쓰면서 제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이 너무 편리해졌다는 것입니다. 업무 능률이 떨어지면 번아웃, 감정 기복이 심해지면 우울감,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건망증. 이 설명들이 모두 틀린 건 아니지만, 그 아래에 다른 원인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너무 쉽게 닫아버리는 것 같습니다.
초로기 치매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병률 수치만 놓고 보면 흔한 병은 아닙니다. 다만 증상이 2~3개월 이상 지속되고 일상 기능에 변화가 온다면, 전문의에게 한 번 확인받는 것이 "나는 그럴 리 없다"는 자기 진단보다 훨씬 낫습니다. 제 경험상 가장 후회되는 건 늦게 알아챈 것들입니다.
참고: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543586?type=editn&cds=news_edit